하나님은 사람의 영혼이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심
15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16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장구히는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나의 지은 그 영과 혼이 내 앞에서 곤비할까 함이니라_사 57:15~16
지존무상하며(지극히 높으시고 그 이상 높은 분이 없다는 뜻)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하나님이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시지만 낮고 천한 인간을 살피시면서 마음이 통회하고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라는 말은 인간이 비록 죄를 지었지만은 하나님 앞에 죄인인줄 알고 참으로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자식이 아무리 죄가 많아도 부모 앞에 와서 잘못했다고 진정으로 빌면서 용서해 달라고 하면 부모는 그 아들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런 놈은 죽여야 된다고 해도 사형수 어머니에게 가서 당신 아들 어떻게 할까요 하면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내 아들, 이 못난 자식. 그러나 내게는 귀한 자식입니다’라고 애원합니다. 사랑은 법도 초월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어떤 죄인이든지 참으로 용서를 구하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무조건 구원해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가장 큰 죄를 지은 사람을 죽이는 사형법이 산 채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이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예수님 양편에 살인강도 두 사람은 많은 죄를 범하여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두 강도 중 한 강도는 죽는 순간까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또 죽은 사람도 살렸다면서 왜 당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면 당장 십자가에 내려오고 나도 좀 살려주시오’라고 하며 죽어가면서까지 하나님께 반항하고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강도는 ‘너와 나는 우리가 지은 죄로 죽는 것이므로 마땅하다. 그러나 내가 보니 이 분은 죄가 없다. 네가 아직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온갖 고통을 받아 죽어 가시면서도 죄인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의인으로서 죄인을 대신해서 죽으시는 분이심을 깨닫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어 지옥까지 들어가야 될 것을 알고 죄를 철저히 뉘우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죽는 순간에 주님께 자기의 영혼을 부탁했습니다.
‘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해 주십시오.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 때, 저 같았으면 ‘네가 평생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만 하고도 천국은 가려고? 너는 못 간다’라고 했을 텐데 예수님은 즉시 ‘너와 내가 오늘 낙원에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으니 그 강도는 틀림없이 낙원에 갔습니다.
그 한편 강도가 구원받은 것이나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무조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죄인이라도 참으로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구원해 주십니다. 그래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면서 겸손한 자의 영,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영을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 장구히는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나의 지은 그 영과 혼이 곤비할까 함이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그 영혼이 멸망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범죄했을 때 하나님이 땅을 저주하시고 여자에게는 해산하는 고통을, 남자에게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을 것이라고 선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땅을 저주하시고 인간에게 고통과 수고와 죽음을 주심은 인간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성경은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예레미야애가 3: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꾸짖고 때리는 것은 미워서 죽으라는 뜻이 아니라 잘못을 뉘우치고 고쳐서 미련한 것이 벗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고통을 주신 것도 범죄한 인간이 죄를 뉘우치고 죄로 말미암아 저주 받은 땅에 마음을 붙이지 말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땅에는 진정한 소망이 없음을 알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여 영원한 소망을 주시려고 하나님이 땅을 저주하시고 인간에게 고통을 주신 것입니다.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라는 말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영원히 노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잠깐 인간에게 노하셨고 고통과 징계도 주셨지만 영원히 하시지는 않습니다. 사람을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도록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