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후에 오는 하나님의 심판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_히 9:27

그렇습니다. 죽은 후에 모든 것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있습니다. “흙(육체)은 여전(如前)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spirit:靈)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전도서 12:7)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심판이 있습니다.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_롬 14:10 ~ 12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모든 무릎이 하나님 앞에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면 형사법정의 검사처럼 죄·벌에 대한 논고(論告)를 할 자는 필요 없습니다. 자기 입으로 자기 죄를 다 직접 고(告)하게 됩니다.

“나 그때 그런 일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일평생의 모든 일이 영화 필름 돌아가듯 다시 상영되면서 스스로 확인할 터인데, 어떻게 부인하겠습니까? 자기는 전혀 기억조차 못하는 일까지, 자기는 죄가 아니라고 여겼던 마음속의 상태까지 다 볼 수 있게 됩니다. 일생을 마음까지 찍는 ‘몰래카메라’가 따라다니며 촬영해 놓은 것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기계보다도 정밀한 기계장치인 양심을 우리 속에 설치해 놓으셨습니다.

로마서 2장 15절에 “양심(良心)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한다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죄를 지으면 양심에 모든 죄가 기록됩니다. 녹음할 때 녹음기에 빨간 불이 깜박거리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말의 크기에 따라 불이 깜박깜박 거리는데, 이는 말하는 것이 녹음되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물론 모든 장면이 녹화까지 다 될 수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양심에 죄가 전부 기록이 됩니다. 이 말씀은 비유가 아닌 사실입니다. 잠언에 “사람의 영혼(spirit)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잠 20:27)라고 말씀했습니다. 양심(良心)은 영(靈:spirit)에 속한 것입니다. 양심과 마음은 다릅니다. 마음, 생각, 정신 등은 혼(魂:soul)에 속하고, 양심은 영의 영역입니다. 마음은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양심은 동일합니다.

그 영 속에 양심이 하나님의 등불로 사람의 깊은 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레이더 스크린에 적기가 잡히듯, 죄가 나타나면 양심이 진동합니다. 죄가 들어오면 양심에 평안이 깨집니다. 속에서 “이 나쁜 놈아!” 라고 나무랍니다. 어떤 책에 보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던 무신론주의자가 양심에 대해 연구하다가 결국 하나님을 믿게 됐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데도 죄를 지으면 양심이 괴롭고, 뭔가 두려워 고민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양심은 하나님이 주신 지상명령이다. 양심을 보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달이 둥그렇게 떠 있는 여름밤에 아버지와 아들이 산에 달구경을 갔습니다. 길옆에 보니까 수박밭이 있었습니다. 수박 하나를 따 먹고 싶은 생각이 든 아버지가 아들 보고 “예야! 너 망 봐라. 수박 하나 따올게” 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이것은 남의 수박인데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괜찮다. 하나 먹어도 괜찮다. 누가 오는지 안 오는 지나 봐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들을 망보게 해놓고 살금살금 수박을 따려고 하는데, 아들이 “아빠, 누가 봐요”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버지가 “누가 봐?” 묻자, 아들이 “하나님이 보시네요. 달을 보니까 하나님 눈처럼 생겼거든요”하고 대답했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이놈!” 하는 것 같아 얼마나 불안한지…

전에 신문에 난 기사 내용입니다. 어떤 청년이 이틀 동안 굶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부인의 핸드백을 날치기하여 돈을 빼았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배고픈 것을 해결하고는, 배가 부르자 즉시 파출소에 가서 자수했습니다. 배고플 때는 너무 배가 고파서 죄를 지었지만, 배가 부르자 양심에 가책이 생겨 자기 발로 걸어서 자수를 한 것입니다. 양심의 괴로움, 그 양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자기는 몰라도 양심은 하나님을 두려워 합니다.

“양심(良心)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죄를 지으면 죄를 지적하는 것이 법(法)입니다. 양심은 마음에 새긴 율법입니다.

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_롬 2:16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면, 양심이 기록하여 저장하고 그 죄들을 자기 입으로 다 실토해 낼 것입니다. 녹음기 가져다가 증언 청취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_히 4:13

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
_시 50:21

인간이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가만히 보고 계시니까 사람처럼 눈감아 주는 줄 알았다면 오산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침묵하고 계신다고 해서 죄를 눈감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때 죄인의 모든 죄를 각 사람 앞에 차례대로 베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혼자만 알고 지은 죄, 둘만 알고 지은 죄, 쥐도 새도 모르게 지은 죄, 그리고 이미 지나간 옛날에 지은 죄 모두가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_시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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