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행위에 속한 자는 결국 저주를 받음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_갈 3:10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이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義)의 표준인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평생 죄만 짓는 사람도 많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도 부지기수인데, 이들은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니 나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본다면 선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해야 이해하기가 쉬운데, 오히려 “저주(詛呪) 아래” 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율법이 정한 바를 행하고자 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해야 맞을 것 같지 않습니까? 물론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면 복(福)을 받습니다. 율법을 완전하게 행할 수만 있다면 복을 받아 천국에 가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런데 죄성(罪性)을 갖고 태어나 죄악 된 세상에서 죄를 범하고 사는 인간이 율법이 규정하는 의와 선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율법의 모든 계명을 규정대로 항상 행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저주를 받습니다. 율법을 범한 것이 죄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로마서 6:23)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에, 율법을 범한 죄의 대가(對價)는 죽음입니다. 그것이 율법을 행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으려는 자에게 주어지는 저주입니다.

율법을 지켜 하나님께 가려고 하는 사람이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각해 보면 자명합니다. 제대로 다 지키면 저주를 받을 리가 없습니다. 문제는 지킬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몇 가지는 지키고 몇 가지는 못 지키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지키려면 성경이 요구하는 대로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야고보서 2:10) 된다는 말씀도 같은 원칙을 설명합니다. 가령 열 개의 고리로 이어져 천국에 걸려 있는 줄을 어떤 사람이 붙잡고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줄의 고리가 끊어지면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합시다. 그 열 개의 고리가 십계명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고리가 몇 개 끊어지면 떨어지겠습니까? 하나 끊어져도 떨어지고, 열 개 다 끊어져도 물론 떨어집니다. 주전자나 솥 밑의 구멍이 열개 뚫어지나 하나 뚫어지나 사용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십계명 중에 몇 개 범하면 지옥 갑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했는데, 큰 죄 값은? 사망입니다. 그럼 작은 죄 값은? 그것 역시 사망, 즉 죽어 심판받고 불못에 던지우는 것입니다. 꼭 행위로 범죄하지 않았을지라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노하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도 지옥에 들어갑니다. 마음에 음욕을 품는 자도 이미 간음한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율법을 지켰다고 할 수 있습니까? 말로 욕설도 하고 마음으로 미워하며, 실제 행동으로 죄도 지었습니다. 마음으로, 말과 행동으로 율법을 이미 철저히 범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율법을 지켜 의롭다 함을 받으려는 사람은 결국 저주 아래 있습니다.  

요즈음 수영 잘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부산항에서 헤엄쳐서 미국까지 건너갈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 “미국 가는데 비자 받고 비행기표 사고, 그렇게 복잡하게 절차 밟고 돈 들여 갈 것 뭐 있느냐? 나는 수영 잘 하니까 헤엄쳐서 가련다”며 한 100명쯤의 사람이 헤엄쳐서 건너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까지 헤엄쳐서 건너가면 경비절약이 문제가 아니라 영웅이 될 것이지만, 건너가다 실패하면 죽습니다. 100명 가운데 몇 명쯤이나 건너가고, 몇 명 쯤 못 건너갈 것 같습니까? 다 죽습니다. 한 10,000명 쯤 출발한다면 몇 명 정도 건너갈 것 같습니까? 그래도 역시 다 죽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출발하면 어떨까요? 물론 다 죽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입니다. 두려워 할 것을 두려워 할 줄 아는 것은 비겁도, 어리석음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어림도 없는 일, 하나마나 뻔한 일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여기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생활 속에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전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 우리는 구원의 조건을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선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 가려고 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수영으로 미국까지 건너가려는 사람보다 훨씬 어리석습니다. 그러므로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라는 말씀과 같이, 그들은 선하게 살고자 노력하고서도 끝내 지옥에 가는 결과를 맞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켜서 구원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까지 쌓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공로(功勞)와 선행이 어떠하든, 또한 그것들이 천국 가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음을 발견함으로 갖는 허무함이 어떠하든, 떨쳐버릴 것은 떨쳐야 합니다. 자기 공로와 생각이 다 깨져야 한다고 해서 억울해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밑천을 많이 들여 벌인 사업이라도 안 될 것이 뻔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투자한 밑천만 아까워하여 끝까지 끌고 가다가 결국 다 털어먹는 사람이 있습니다.『유태인 상술비법』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유태인들은 장사를 시작하여 일단 해 보고, 안되면 다시 한 번 해 보고, 그리고 또 한 번 더 시도해 본답니다. 그렇게 세 번 정도 해봐서 안 될 것 같으면, 얼마의 돈이 투자되었든지 간에 그 일을 치워버리고 “아이구! 속 시원하다”고 한답니다.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는 한 번 투자하고, 두 번 투자하고, 세 번 투자하고서도 안 되면 네 번째는 가진 것을 아예 싹 쓸어넣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노름판에서도 처음에는 작은 단위로 하다가, 막판에 가서는 많은 돈을 잃은 사람이 그 손실을 한꺼번에 만회하려고 나머지를 다 거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들어간 밑천 아까운 것만 생각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이 밀가루 장사를 하는데, 밀가루를 잔뜩 사 놓았습니다. 그런데 밀가루 값이 그만 폭락을 해서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까짓것 내가 망해서 패가망신 당하느니 보다는 차라리 죽어버려야지”하고, 자살하려고 노끈을 하나 샀답니다. 대들보에다가 노끈을 매놓고 방 한 가운데서 목매어 자살하려고 하는데, 라디오에서 밀가루 값이 갑자기 폭등했다는 뉴스가 나와 자살을 하지 않고 큰 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살하려고 산 그 끈을 못 써먹을까 봐 아까워서 자살했다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어이없는 짓을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쓸데없게 된 노끈은 미련 없이 내버릴 것입니다. 아무리 없는 돈에 어렵게 구입했을지라도, 필요없게 된 이상 버려야지요.

이제까지 율법을 지켜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고자 했을지라도, 그것이 소용없는 일인 줄 알았다면 즉시 포기해야 합니다. 버릴 것을 버려야, 손에 붙잡고 있는 쓸데 없는 것을 놓아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놓으면 천국 가는 줄을 놓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놓음으로써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의 줄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말씀드리는데도, 수십 년간 교회 다니며 쌓은 자기의 공로에 미련이 남아서 “그래도 율법을 지켜야죠! 지키는 데까지는 지켜보아야죠!” 하고 고집하시는 사람도 있으실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부산에서 미국까지 헤엄쳐서 갈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 앞에서도 ‘내가 이미 많이 왔는데 가는데 까지는 가봐야지요’라며 계속 헤엄치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나갔다가는 돌아오지도 못하고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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