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한 대제사장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죽고 부활하시어)...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브리서 9:24).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고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구약 시대에 대제사장이 하는 것처럼 하려면 예수님도 일년에 한 번씩 자주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습니다(히브리서 9:,26).
그리고 우리를 위해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피를 뿌리시며 기도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는 이 성경 말씀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내 죄도 사하셨다는 말씀이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代贖)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부활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살아 계시는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거룩하신 보좌 앞에 항상 주 여호와께 나의 죄사하시기를 쉬지 않고 비시네”(찬송가). 그리고, 우리 죄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것은 죄 값을 갚았다는 그 사실을 보증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저들을 위해 죽었습니다. 정 아무개 박 아무개, 누구누구의 죄를 위해 피 흘려 죽었습니다. 이 피를 보십시오”라고 기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에 “됐다”고하십니다. 성경은 그것을 우리에게 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를 힘입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갑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힘입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 죄를 완전하게 속량해 주신 그 공로를 의지하고 나아간다는 말입니다. 자기 공로를 의지하고 나아갑니까? 아닙니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빈 손 들고 앞에 나가 십자가를 붙드네”(찬송가). 아무런 의(義)가 없는 자이지만 오직 도와주심만 바라고 빈 손 들고 비참한 죄인 그대로 나아갑니다.
그 공로를 의지하는 것,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내 열심, 내 정성, 내 의로운 어떤 행위를 의지하고 나갔다가는 당장 저주받아 죽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하나님 앞에 살아 계십니다.
가령 내가 어떤 사람에게 한 10억 정도의 많은 빚을 졌다고 합시다. 요즘 같은 경제위기 시에는 사업 실패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자는 눈 덩이처럼 불어나는데 한 푼의 돈도 갚을 능력은 없고, 그렇다고 도망갈 수도 죽을 수도 없어 밤낮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를 잘 아는 어떤 돈 많고 마음 좋은 분이 “아이구, 저 사람이 빚 때문에 저렇게 고민해서 되겠느냐. 잘못하다가는 죽게 생겼다. 나라도 대신 갚아 줘야지” 하고 나를 위해 그 빚을 다 갚았습니다. 원금은 물론이고 이자까지 다 갚았습니다.
빚을 다 갚아 주고 그 기쁜 소식을 전해 주려고 내게 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그 사람이 죽었다고 합시다. 그럼 나는 빚 때문에 고민합니까, 고민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고민합니다. 그 이유는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빚은 다 갚아 줬는데, 그 증인이 죽고 없습니다. 증인도 없고 또한 아무 증거도 없으니, 빚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빚쟁이가 그것을 알고 다시 내게 와서 빚 달라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는지, 아니면 단순히 모함을 당해 억울하게 죽으신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할아버지에게 “예수님이 누구 때문에 죽으셨어요?”라고 물었더니, “그야 자기 죄 때문에 죽었겠지”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자기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모르니까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은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셨다는 보증이며, 우리의 죄를 다 사하셨다는 증거입니다.
내 빚을 대신 갚아준 분이 내게 와서 “자, 당신 빚은 다 갚았습니다. 영수증 여기 있습니다”라고 확인해 주고, 또한 건강하게 살아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빚쟁이가 아무리 악질이라도 나에게 또 갚아달라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죄 값을 대속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증인으로 살아 계시고, 영수증도 여기 이렇게 있습니다. 이 성경이 바로 그 영수증입니다. 구약은 죄를 사해 주시겠다는 약속이고, 신약은 예수님이 죄를 사해 주셨다는 약속입니다. 이 성경에다 예수의 피로써 도장을 치신 것입니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찬송가). 받은 증거가 바로 성경입니다. 또한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욥기 19:25)는 말씀처럼, 그 분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피를 뿌리시며 기도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는 이 성경 말씀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내 죄도 사하셨다는 말씀이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代贖)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부활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살아 계시는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거룩하신 보좌 앞에 항상 주 여호와께 나의 죄사하시기를 쉬지 않고 비시네”(찬송가). 그리고, 우리 죄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것은 죄 값을 갚았다는 그 사실을 보증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저들을 위해 죽었습니다. 정 아무개 박 아무개, 누구누구의 죄를 위해 피 흘려 죽었습니다. 이 피를 보십시오”라고 기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에 “됐다”고하십니다. 성경은 그것을 우리에게 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_히 7:24 ~ 히 7:25
그 공로를 의지하는 것,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내 열심, 내 정성, 내 의로운 어떤 행위를 의지하고 나갔다가는 당장 저주받아 죽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하나님 앞에 살아 계십니다.
19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보인이 높은데 계시니라_욥 16:19
빚을 다 갚아 주고 그 기쁜 소식을 전해 주려고 내게 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그 사람이 죽었다고 합시다. 그럼 나는 빚 때문에 고민합니까, 고민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고민합니다. 그 이유는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빚은 다 갚아 줬는데, 그 증인이 죽고 없습니다. 증인도 없고 또한 아무 증거도 없으니, 빚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빚쟁이가 그것을 알고 다시 내게 와서 빚 달라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는지, 아니면 단순히 모함을 당해 억울하게 죽으신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할아버지에게 “예수님이 누구 때문에 죽으셨어요?”라고 물었더니, “그야 자기 죄 때문에 죽었겠지”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자기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모르니까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은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셨다는 보증이며, 우리의 죄를 다 사하셨다는 증거입니다.
내 빚을 대신 갚아준 분이 내게 와서 “자, 당신 빚은 다 갚았습니다. 영수증 여기 있습니다”라고 확인해 주고, 또한 건강하게 살아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빚쟁이가 아무리 악질이라도 나에게 또 갚아달라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죄 값을 대속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증인으로 살아 계시고, 영수증도 여기 이렇게 있습니다. 이 성경이 바로 그 영수증입니다. 구약은 죄를 사해 주시겠다는 약속이고, 신약은 예수님이 죄를 사해 주셨다는 약속입니다. 이 성경에다 예수의 피로써 도장을 치신 것입니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찬송가). 받은 증거가 바로 성경입니다. 또한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욥기 19:25)는 말씀처럼, 그 분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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