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멸망치 않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_요 5:24
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_요 10:28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보증(保證)은 성령(聖靈)이시며, 몸이 구속(救贖)된다는 보증도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을 모신 사람은 장차 천국에 들어간다는 보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_고후 5:5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_엡 1:13-14
성령은 보증으로 구원받은 사람 안에 오셨기 때문에 그 사람의 몸이 구속될 때까지 떠나시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안전보장(安全保障)이 되어 있는 것이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_요 14:16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_엡 4:30
구원을 받아도 잘못하면 지옥에 간다는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말은 구원은 주님의 공로(功勞)로 받지만 천국에 갈 때에는 자신의 공로로 간다는 말과 같다. 주님의 공로에 자기의 행위를 덧붙인 것이다. 이것이 곧 “다른 복음”이며 갈라디아 교회가 이런 잘못에 빠져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라고 말했다. 이런 잘못된 교리는 주님의 공로를 완전히 부정(不淨)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주님은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비록 지금은 연약하여 설사 잘못한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담대히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寶血)의 능력 때문이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도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실 때 우리가 들려 올라가는 것도 구원받은 우리가 무엇을 잘 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자신의 피로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의 피밖에 없다. 예수의 피가 얼마나 귀한지 알아야 한다. 영생(永生)은 영원히 멸망치 않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믿을 때 얻은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 6:47)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영생은 도중에 잃어버리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영원히 영원히 멸망치 않는 것이다.
존 칼빈(John Calvin)이라는 사람은 확실히 거듭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성경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가르쳤으나 잘못 표현한 것도 있었다. 그가 주장(主張))한 예정론(豫定論)은 많은 혼란을 일으켰다. 그의 예정론은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구원을 받지 않은 사람이 그 예정의 교리로 위안(慰安)을 삼으면 중대한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자기는 하나님의 예정 안에 들어 있지도 않는데 ‘내가 이렇게 주님을 따라 열심히 살아가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에 가는 것이 이미 예정되었겠지’라고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겨 두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이 하나님의 예정 안에 들어온 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는 것이다. 거듭나서 구원을 받을 때 각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예정 안에 들어온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칼빈이 예정의 문제를 극단(極端)으로 주장하여 하나님께서 천국에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을 미리 정해 놓았다고 못박은 것은 옳지 못한 것이었다.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인도되었다. 하지만 그가 예정론을 주장한 것은 자신이 실지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다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거듭나지도 않은 즉 그리스도인이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 예정의 교리만 믿고 있다면 종교 생활을 열심히 하고도 결국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한 번 거듭난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히 말했다.
요한 웨슬리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 국교회의 목사가 된지 13년만에 거듭났으며 성경을 많이 깨닫고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위대한 전도자이다. 웨슬리는 예정론에 반대하고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강조하였다. 웨슬리의 가르침은 옳은 것이었다. 그것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강력하게 전도하는 가운데서 얻은 경험(經驗)이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셔서 오늘도 오래 참고 기다리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그도 잘못 가르친 것이 있었다.
웨슬리가 “거듭난 사람도 잘못하면 잃어질 수 있다”라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혹시나 웨슬리가 인간의 자유를 인정했기 때문에 구원을 얻는 것에 각 사람의 자유가 개입되므로 잘못하면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이 아닌가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상은 구원받았다는 사람들 중에 잘못 사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들을 경고(警告)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구원받아도 잘못하면 잃어질 수 있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실상은 구원받은 사람이 올바로 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징계(懲戒)와 책망(責望)이 있으며(히 12:5∼11), 순종하는 자에게는 금세와 내세에 상급이 약속되어 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만일 구원받은 생명을 구원받은 사람 자신이 지켜야 한다면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그러나 그 생명을 잃지 않게 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므로 항상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萬有)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9). 이 말씀은 구원받은 자의 생명이 완전히 보장되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다. 말하자면 구원받은 것은 절대로 중간에 해약될 수 없는 영생 보험에 든 것이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 3:3).
하나님께서는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흥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애(仁愛)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54:9,10)라고 말씀하셨다. 죄인을 구원하는 것도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이요 영원한 천국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도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으로 말미암은 언약 때문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 구원이 인간에 의해서 파괴되거나 불완전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은혜를 망령되이 여기는 것이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주님께 순종하는 것은 지옥에 갈까 봐 두려워서 혹은 천국에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을 구원해 주신 주님의 그 크신 은혜를 감사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하기 때문이다. 그 크신 은혜로 이루어진 구원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으며 주님과 구원받은 사람과의 사랑의 관계는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결코 끊을 수 없는 것이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訟事)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定罪)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懇求)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患難)이나 곤고(困苦)나 핍박(逼迫)이나 기근(饑饉)이나 적신(赤身)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니라”(롬 8:33∼35,38,39).